삼육대학교 약학과 이희조
파견기간 : 2024. 07. 01 ~ 2024. 07. 12
파견기관 : 지역약국
1. 지원동기
네덜란드 교환학생을 신청한 동기는 유럽 복지 국가의 선진적인 의료 시스템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약국 시스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다른 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을 경험하는 것이 저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고, 더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네덜란드가 비록 영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어, 실습 중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후보 국가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2. 지원과정
1월 중순, 국문 신청서와 영문 이력서(CV), ML를 제출하였습니다. 세 문서는 모두 충분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작성하였으며, 주로 1지망인 네덜란드와 2지망인 영국의 실정에 맞춰 내용을 구성하였습니다. 특히 제출 전, 주변 사람들에게 문서를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월 말, 예비 선발자 합격 통지를 받았고, 4월 초에는 네덜란드 KNPSV(네덜란드 약학생 협회) 담당자(SEO)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2주와 1개월 중 선호하는 프로그램 기간을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았고, 여행 일정을 고려하여 2주 프로그램을 선택하였습니다. 이후 약국 호스트와의 연결이 이루어졌습니다. 4월 중순에는 2지망이었던 영국 측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이미 네덜란드 프로그램을 수락한 상태여서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조
이후 약국 호스트와 자기소개 및 실습 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조율을 마친 후, 7월 초부터 2주간의 실습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과 일정 조율에 힘써주신 김수민 교환학생국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3. 네덜란드 약국 이야기
1) 자동화에 미친(?) 네덜란드 약국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할 각오로 시작한 약국 체험 첫날, 저는 컴퓨터를 배정받고 하루 종일 앉아서 실습을 진행했습니다. 네덜란드 약국에서는 약 포장부터 간단한 대면 복약 상담까지 약사가 아닌 테크니션이 담당하며, 약사는 주로 뒤에서 데스크탑을 사용해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약사들은 전자 처방전을 검토하거나 테크니션 및 다른 직원들의 질문에 응대하고, 다양한 관계자들과 전화로 소통하는 업무를 주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실습을 진행한 네덜란드 Almere(알메르)에 위치한 지역 약국은 테크니션 3명과 직원 1명이 기본 인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약사는 최대 2명이 함께 근무합니다. 제 호스트였던 약사는 이 약국의 Pharmacy Manager였고, 그 아래에는 2년 차 근무 약사가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약사가 되기 위해서는 약대 졸업 후 2년간 실무 경험을 쌓고, 추가로 전문 교육(Specialized Course)을 이수해야 약국 운영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Pharmaceutical Manager라는 직책이 있어 약국의 재고 관리 및 직원 관리를 비롯한 경영 전반을 담당하는데, 덕분에 약사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크게 줄어듭니다.
제가 실습한 약국은 프랜차이즈 약국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네덜란드에는 개인 약국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약국은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며, 여러 지역 지점이 한 팀처럼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약국의 매니저는 각 지점을 관리하며, 다른 매니저들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통해 소통하고 약사들의 근무 스케줄을 조율합니다. 근무 약사들은 요일에 따라 여러 지점을 오가며 근무하거나, 인력 부족 시에는 온라인으로 여러 지점의 처방전을 동시에 검토하기도 합니다.
3~4년 전부터는 모든 시스템이 전자화되어, 처방전은 여러 경로를 통해 하나의 프로그램에 모입니다. 약사는 컴퓨터를 통해 할당된 모든 처방전을 검토하며, 하루에 약 300건의 처방전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이는 컴퓨터 시스템이 자동으로 처방전의 중요도를 분류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반복 처방전이나 위험도가 낮은 처방전은 주로 인적사항과 약물 명칭을 중심으로 검토하며, 초진료, 소아, 노인, 용량 변경 등 특별한 처방전은 '고위험 처방전(High Risk Prescription)'으로 분류되어 약사들이 더욱 신중하게 검토합니다. 또한, 테크니션 A, 약사, 테크니션 B가 삼중 검토 과정을 거쳐 오류를 최소화합니다. 특히 소아 및 노인 환자의 경우 용량이 달라 세 번에 걸쳐 확인하게 됩니다.
네덜란드의 약국 조제 방식은 한국과 크게 다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약을 한 알 한 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처방된 약을 포장된 상태로 환자에게 전달하며, 환자가 복용법에 맞춰 직접 복용해야 합니다. 이 방식은 ‘Baxter 방식’으로, 다제약물복용 환자 등 특별한 경우에만 의사의 요청에 따라 사용됩니다. 이마저도 약국에서 직접 조제하지 않고, 전문 회사에 의뢰해 약을 배달받습니다. 한국처럼 정제를 갈아 산제로 만들거나 물약을 제조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필요할 때는 특수 제제를 생산하는 회사(fagron)에 용액, 가루약, 좌약, 연고 등을 주문해 해결합니다. 한국에서는 환자들에게 개별 포장을 해주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조제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관리 시스템이 있는지 궁금해하더군요.
2) 네덜란드 약국의 새로운 실험들
네덜란드에는 다양한 사보험 회사가 존재하며, 국민 대부분이 사보험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추어 보험 회사들은 각자의 정책을 운영하며, 보험 상품 간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험 회사들은 약사에게 ‘Medication Review(약력 검토)’를 권장합니다. 일반적인 처방전 검토(Prescription Review)는 현재 처방된 약들을 중점적으로 살피는 것이라면, Medication Review는 다제약물을 복용하는 노인 환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환자와 필수로 통화 상담을 진행하고, 과거 약력과 실험실 검사 결과를 비교하여 전반적인 약물 치료 상태를 점검합니다. 보험 회사들은 약사가 이 검토를 통해 불필요한 약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약사에게는 건당 일정 비용이 지급됩니다.
한국과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약사가 환자의 기본 vital sign(체중, 혈압, 맥박 등)뿐만 아니라 실험실 검사 데이터(전해질, CBC, 간, 신장, 갑상선 기능 등)에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는 10년 전 법이 개정되면서 가능해진 일로, 당시 의사들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네덜란드에서는 보험 회사가 의료 체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 아래에 의사와 약사가 있다고 표현합니다.
최근에는 의사는 진단에, 약사는 처방에 더 특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Point-i Project'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 연구팀을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진행되어온 것으로, 약사가 1차 의료 병원 내 GP(일반의)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며 환자들과 별도로 약물 상담을 진행하고, 처방에 더 깊이 관여하는 형태입니다. 예를 들어, 신경안정제인 Oxazepam을 복용 중인 20대 남성이 약물 중단에 대해 논의하고 싶을 때, 약사가 환자의 전반적인 약력과 과거 이력을 토대로 상담을 진행하고, 더 적절한 약물 처방이나 중단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의료 인력이 부족한 네덜란드에서 의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약사의 전문성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와 같이 약물 상담과 처방을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약사를 'Pharmacotherapist'라고 지칭하며, 제가 실습한 약국에서도 빠르면 올해(2024) 하반기부터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루 4시간은 병원에서, 나머지 4시간은 약국에서 근무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시스템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보험사의 재정적 지원 여부가 중요한데, 현재 약사들과 법인 관계자들이 주기적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3) 실습 기간 중 일상
실습 기간 동안의 주요 업무는 약력 검토 케이스를 연구하고, 약사와 함께 토론하는 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의약품 시스템에 대해 자료를 읽고 질문하며 토의하는 과정도 있었고, 테크니션의 업무를 관찰하며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배우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또한, 약사가 일하는 다른 약국을 함께 방문하여 네덜란드 약국 운영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5학년 1학기에 약물치료학 I, II 수업을 듣고 간 것이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고혈압, 당뇨 환자의 약력 검토를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본적인 약물치료 지식을 바탕으로 약사들과 진지한 토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환학생 후기를 미리 읽어보면서 실습 중에 궁금할 수 있는 질문들을 준비해 간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4. 생활, 여행, 마치며
생활 면에서는, 이전 네덜란드 교환학생 후기를 통해 호스트 숙소가 제공되는 경우를 보아 기대를 했었지만, 제가 실습한 곳에서는 숙소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퇴근 후에는 암스테르담이 1시간 거리에 있어 자주 여행을 다녔고, 주말에는 근교 도시나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암스테르담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매우 현대적인 미감이 발달한 도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 고흐 미술관과 안네 프랑크의 집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