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SUMMER 프랑스 ANEPF 교환학생 프로그램 참가후기
삼육대학교 최지연
파견기간 : 2019.07.08. - 2019.08.10.
▶파견기관 : 지역약국 (Pharmacie du vieux nice)
▶본 프로그램은 ANEFP (Association Nationale des Etudiants en Pharmacie de France) 과의 협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 지원 계기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공유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와서는, 약학대학 입시 준비로 바빠 교환학생을 지원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약대 3학년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 SEP에 다녀온 선배의 이야기가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약대는 다른 과들과 달리 매 학기 4년간 꽉 채워진 커리큘럼으로 인해 학기 중의 교환학생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방학 동안에, 그것도 해외의 약학대학 캠퍼스 뿐만 아니라, 지역 약국과 병원 약국 등 다양한 곳에서 실습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존재 자체가 저에게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2. 지원 과정
SEP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IPSF (국제약학대학연맹)와 실습 기관에서 볼 CV와 ML, 그리고 KNAPS에 제출할 신청서를 써야 합니다. 먼저, 저는 국가를 선정하는 데에 가장 긴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지원할 수 있는 국가들이 굉장히 많고, 각 지역마다 요구하는 것들 – 이를테면 5학년 이상, 특정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등 – 이 달라 KNAPS 에서 후기를 쓴 이전 분들의 글과 선배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여 결정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유럽 국가에서 실습해보고 싶어서 거의 모든 유럽 국가의 약학대학 단체들을 검색하고 최대한 세부적으로 알아보며 신중하게 결정했습니다. 또한, 지역 약국, 대학 연구소, 병원 약국 등으로 세분화되는데, 실습 기관들이 각 국가별로 어떻게 다른지 여러 모로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원서인 CV와 ML은 처음 써 보는 글이라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다행히도 KNAPS 교환학생국에서 CV에 대한 예시문을 제공해 주셔서 CV는 쉽게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ML은 생각보다 일정하게 정해진 틀이 없고 국내에서 많이 쓰이지 않아서 정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ML이라는 글의 구조를 대강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에 ML을 검색하고 나오는 예시문을 50개 정도 뽑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읽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ML 예시를 읽어보면서 제 글에는 어떤 내용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고, 제 상황과 제가 가지고 있는 경력, 공부한 내용, 참여한 행사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ML을 쓸 때 너무 막막하시다면 최대한 많은 글들을 읽어보시거나 이전에 SEP에 다녀온 친구나 선후배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3. 실습 내용
저는 남프랑스의 큰 해안 도시, 니스의 지역 약국인 <Pharmacie du Vieux Nice>에서 5주간 실습 했습니다. 프랑스는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소통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약사님과 약국 직원 두 명 모두 영어를 정말 잘 하셔서 소통에 거의 문제가 없었고, 니스는 관광 도시이기 때문에 약국에 오는 환자 중 40%정도는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관광객들이었습니다. 또한, 니스는 지리적 특성상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와도 인접해 있어서 5주의 실습은 다양한 언어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약국에 가서 제가 하는 첫 번째 일은 약국에 오는 환자를 반갑게 맞이하고, 영어를 쓰는 사람은 제가 직접 일반의약품을 주거나 필요한 프랑스 약국 화장품을 소개하고 파는 일입니다. 처방전 약품은 제가 담당할 수 없기에, 저는 가벼운 상처나 벌레약, 해파리 물린 약, 감기약, 소독약 등의 일반의약품 수준에서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을 제공하거나 아벤느, 라로슈포제, 바이오더마 등 우리나라 드럭스토어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약국 화장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화장품을 판매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프랑스어를 잘 못 해서 혹시라도 약국에 폐만 끼치면 어떨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환자들이 영어권 국가에서 오신 분들이어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영어를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면, 비영어권에서 오신 분들도 최대한 저와 대화하려고 영어 단어를 써서 보여주시거나 아픈 부위를 콕 집어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Pharmagest>라는 프랑스 약국 관리 소프트웨어를 통해 매일 병원에서 처방받은 전문의약품을 환자별로 확인하고, 혹여나 처방 받은 약 중 약물 상호작용이 있는 약들이 있는지 체크하고 공부하는 일을 했습니다. 관광 도시이다 보니 여행하면서 다친 사람들이 찾는 항염증약, 항균제, 진통제 등 하나의 약을 처방 받았기에 부작용을 크게 일으키는 약은 적었습니다. 또한, pharmagest는 유럽 약전을 기반으로 한 약물 정보도 등재되어 있는데, 이를 활용해 공부했습니다. 매일 약국에서 나간 전문의약품들을 환자 별로 노트에 적고, 약물의 임상적 효능, 유해 작용, 약물 상호작용, 구조, 용법 용량 등을 정리하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 약국에서는 잘 볼 수 없던 다양한 항에이즈약들도 유럽 약전에서는 자세하게 나와있어 항에이즈약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약국에 새로운 일반의약품과 프랑스 화장품들이 올 때, 재고 정리를 도왔습니다. 2주에 한 번 꼴로 약국에 아주 많은 양의 약들이 담긴 박스가 왔는데, 그때마다 약사님과 약국 직원들과 함께 오래된 약은 폐기하고 새로운 약들로 선반을 가득 채우고 정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니스에 온 한국인들 및 동양인들에게 약국 홍보를 했습니다. 약국 앞에 <한국어 가능> 입간판을 만들고, 중국인, 일본인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이모티콘을 붙여 최대한 많은 동양인 관광객들이 오도록 널리 알렸습니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 중국인들이 왔고, 저는 친한 중국인 친구를 통해 중국어를 조금씩 배워 중국인 관광객들이 필요한 일반의약품을 살 때 약국 직원들이 복약지도를 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한자 단어를 써가며 도왔습니다.
4. 프랑스의 보건시스템과 약
프랑스는 보험을 든 전국민이 Vitale 카드라는 초록색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로 병원에서 처방한 전문의약품을 사야 하는 환자들은 Vitale 카드로 결재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보험 처리가 된 약을 환자가 일정 % (주로 30%) 부담하는 방식이지만, 프랑스 환자들의 처방약은 전액 국가에서 부담합니다. 700유로가 넘는 항에이즈약도, 10000유로가 넘는 C형간염약도 국가에서 대부분 부담합니다. 다만 이외의 OTC나 건강보조제, 비타민 등은 약가가 한국과 비슷하거나 (한국에서 타이레놀 1박스에 약 2500원, 프랑스에서 유사 성분의 Doliprane 1박스에 약 2900원) 약간 더 높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전체 의료비용의 70%를 국가가 부담하고, 나머지 30%는 그 사람이 일하는 직장에서 절반 부담합니다. 높은 과세로 환자들에게 진료비와 약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대신, 이러한 의료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너무 높은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사회적 갈등과 병원을 예약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또한, 직장이 없는 노숙인들, 독거노인들에게는 약국에서 영양분이 다량 함유한 단백질 쉐이크 같은 제품을 주기도 했는데, 이 때에도 노숙인, 노인들은 Vitale 카드를 이용하여 그 드링크를 구입했습니다. 즉, 국가에서 환경적 요인으로 쉽게 질병에 걸릴 수 있는 사회적 빈민들에게 최소한의 영양식을 제공하는데, 약국이 1차적인 예방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약에 있어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처방약을 조제할 때 우리나라처럼 1회에 먹어야 하는 약들을 모아 하나씩 포장하여 주는 방식이 아니라, 박스 채로 약을 조제하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몇 mg이 얼마의 기간 동안 먹어야 하는 지에 따라 (ex) 21정, 30정, 14정 등) 박스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A, B, C 약을 하루 3회 7일간 처방 받았다면, 이들을 조제하는 기구에 필요한 양만큼 넣어 1회에 먹어야 하는 A,B,C를 함께 포장하여 총 21개를 주고, 복약지도는 겉 봉투에서 사진, 프린트된 내용으로 자세하게 확인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전문의약품이 있는 캐비닛에 가서 작용 부위에 따라 나뉜 구역을 찾고, 용량과 복용 기간이 일치하는 약 박스를 찾습니다. 그리고, A 약물 몇 mg짜리 x 21 정이 든 박스, B 약물 박스, C 약 박스 등의 세 개의 박스를 줍니다. 그리고 그 박스 별로 복약지도를 간단히 메모하는 식으로 조제를 진행합니다. 물론, 여러 예외 상황도 있고, 양 쪽의 조제방식의 장단점도 있겠지만, 자동조제기가 없다는 점이 한국의 약국과 가장 큰 차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인삼, 녹용 등의 생약 제재를 이용한 건강기능식품이나 갈근탕 등의 한약 성분의 일반의약품이 동양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약으로 쓰이는데, 프랑스에서는 “오메오파티”라는 독특한 약물 라인이 있습니다. “오메오파티(Homeopathy, 동종요법)” 란, 질병을 유발하는 물질을 아주 소량 넣고 buffer로 최대한 희석시켜 가벼운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요법입니다. 이 약물들은 약물 상호작용이 거의 없고, 임산부와 아이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Boiron, lehning 등 몇몇 프랑스 제약회사에서 오메오파티를 이용한 수면유도제, 감기약, 알러지약, 멀미약 등 다양한 약들을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오메오파티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는데, 프랑스에서는 이부프로펜, 아세트아미노펜 등의 일반적인 화학약품 보다 오메오파티 약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가끔 있었습니다.
5. SEP를 추천하는 이유
새로운 국가에서 약대생으로서 공부하고 실습을 한다는 것은 SEP에서만 누릴 수 있는 훌륭한 경험입니다. ANEPF SEO가 구해 준 숙소는 니스의 의대에 다니는 학생이 방학 동안 그 집을 비우게 되어서 빈 방이었는데, 그 어떤 에어비앤비보다도 훨씬 저렴한 가격에 쾌적한 환경으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한 달 살기”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루 중 약국에서 실습하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실습이 끝나고 나서 해변이나 공원에서 여유롭게 쉬거나, 미술관, 박물관 등 관광 명소를 다니거나, 지역의 의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등 현지 약대생처럼 살아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SEP를 하면서 주말에는 곳곳을 여행 다닐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주말마다 에즈, 모나코, 생폴드방스, 엑상프로방스, 그라스 등 니스를 벗어나 남프랑스의 여러 지역으로 여행했습니다. 또, 재즈 페스티벌, 자스민 페스티벌 등 타국에서의 다양한 페스티벌도 즐겼는데, 이것도 정말 즐거운 추억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많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 연구소로 교환학생을 신청한 것이 아니고, 심지어 동양인이 거의 없는 지역으로 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에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약국 사람들을 비롯하여, 약국의 한국어 간판을 보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신 분, 이웃집 분들, 중국 난징대학교에서 온 친구들, Université Côte d'Azur 의 의대생 친구, 같은 약국애서 공휴일에 함께 일한 Faculté de Médecine de La Timone 의 약대생 친구들 등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과 함께 현지인 추천 로컬 맛집도 가고, 프랑스식 노래방도 체험하고, 프랑스와 한국 약국의 차이점과 미국, 북한 등의 국제 이슈에 대해 많은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특히,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서로 가르쳐주고, 집에 초대받아 맛있는 프랑스 가정식과 와인을 선물 받았던 따뜻한 저녁식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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